대만 중부 지역 아리산에 징롱(璟隆)이란 농장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차를 길렀고, 언젠가부터는 커피도 함께 재배해 온 농장이죠. 같은 농장에서 자란 커피와 차의 맛이 어떠할지 궁금해서, 2024년 10월에 빈브라더스 커피하우스에서 선보인 적이 있어요.
커피하우스에서 선보였던 징롱의 게이샤, 우롱, 홍차
아무래도 커피와 차가 기본적으로 향미의 차이가 큰 음료긴 하지만, 징롱 농장의 게이샤와 우롱이 가진 은은하고 섬세한 느낌은 둘의 공통점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당시에는 그것이 ‘테루아’ 때문인지, 아니면 징롱 생산자들의 의도인지 명확히 알기 어려웠는데요. 이후에 만난 대만의 커피와 차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느낀 경우들이 있어서, 혹시 대만 사람들의 차 취향에 커피 향미가 맞춰진 게 아닌가 하는 가설을 세워보게 되었지요.
대만 아리산 징롱 농장
커피 맛은 그 나라의 식문화를 얼마나 반영할까요? 저는 외국 도시의 카페를 방문하여 커피를 마실 때면, 그 나라 사람들의 입맛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보곤 해요. 그 결과 제가 들여다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두 지역이 있는데요. 바로 라이트 로스팅 커피의 덴마크와 시그니처 커피의 중국이에요.
오늘 레터에서는 제가 올해 서울에서 만난 노르딕 음식, 그리고 지난 중국 여행 중에 다양한 음식을 경험하며 커피와 연결 지어 보려 했던 고리들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읽어보시고 각자의 경험을 나눠주셔도 좋겠어요. 그럼 시작해 볼게요.
새로운 노르딕 음식
얼마 전에 서울에 있는 한 노르딕 음식점에 다녀왔어요. 코펜하겐의 식당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셰프님께서, 그곳의 스타일을 가져와 한국의 맥락에 적용하셨다고 하시더군요. 음식을 다 먹고 셰프님께서 생각하시는 노르딕 음식이 무엇인지 여쭤보았더니, 명쾌하게 알려주셨는데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현지의 제철 재료를 사용하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릴 것. 산미로 밸런스를 잡고, 발효 기술을 적절히 활용할 것’
그런데 본연의 향미를 살리고, 적절한 산미를 갖춘다는 말 있잖아요.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이거 ‘노르딕 로스팅’이 추구하는 커피 향미 아닌가요? 로스팅으로 생기는 구운 향과 달콤한 향을 최대한 절제하고, 풋내가 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라이트하게 로스팅한 커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깔끔한 즐거움이 있죠. 셰프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우리가 좋아하는 라이트 로스팅 커피와 '새로운 노르딕 음식'의 결이 닿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상적이었던, 백태와 파인애플, 미역으로 만든 요리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고 나니, 이날 식사의 마무리로 내어주실 커피가 무엇일지 궁금해졌어요. 어떤 커피가 나왔을 것 같으세요? 제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북유럽 로스터리의 커피를 사용하시는지 여쭤보았는데요. 식당의 스타일에 맞게 향미를 잘 맞춰주는 한국 로스터리의 커피를 사용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과연 현지 재료를 사용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새로운 노르딕 음식 선언’에 더 잘 맞는 결정인 것 같다고 느꼈어요.
조합의 전문가들
2026년 6월, 중국의 세 개 도시에 다녀올 일이 있었어요. 바로 상하이와 청두, 충칭이었죠. 중국에 갔으니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을 생각이었는데요. 청두와 충칭에서는 주로 현지 음식을 먹었고, 상하이에서는 다양한 지역의 음식을 시도했어요. 달달한 음식의 상하이, 단맛과 신맛을 조화롭게 잘 쓰는 광둥, 한국인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경쾌한 매운맛의 후난, 화한 허브와 매운 고추를 함께 먹는 윈난, 그리고 중국 음식 하면 빠질 수 없는 마라의 쓰촨까지요.
중국 여러 지역의 음식을 단기간에 먹어 보니 흥미로운 조합의 아이디어들이 보였습니다. 지역마다 나는 재료와 기후가 달라서, 조합의 방식도 그에 따라 달라지더군요. 저는 많은 음식 중에서도 소고기와 박하, 고수, 고추를 함께 볶아 먹는 윈난 음식이 인상적이었어요. 혹시 중국에 가시게 된다면 꼭 한번 시도해보시기를 권해요.
바로 그, 윈난의 소고기 볶음
중국의 식당에서 제가 또 하나 인상적으로 느낀 것은 음식과 차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는 것이었는데요. 특히 차 산지에 가까운 상하이나 광둥 음식점에서 자주 봤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도 음식과 차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특히 딤섬과 차를 함께 즐기는 것을 좋아해요. 웬만한 광둥 식당을 가시게 되면 자연스럽게 차를 주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실 거예요. 스타터(starter)로 차 한 잔 마시고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하는 문화이기 때문이지요.
만약 밀크티를 좋아하신다면 중국 여행 중에 ‘차지(CHAGEE)’를 그냥 지나치기 어려우시겠죠. 차지는 윈난 쿤밍에서 시작해 지금은 쓰촨 청두에 본사가 있는 밀크티 브랜드인데요. 이미 서울에도 몇 곳 진출해 있어요. 청두에서 차지가 보일 때마다 들러 밀크티를 마셨는데, 차와 우유, 과일의 조합이 절묘해서, 중국 사람들이 ‘섞는 일을 정말 잘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음식과 차의 영역에서 재료 조합을 잘하는 사람들은 어떤 커피를 만들까요? 그 답은 현재 중국 카페들의 메뉴판 최상단에 있어요. 바로 더티(dirty)와 시그니처 커피죠.
청두의 카페 CARPARK의 메뉴판
잠시 개념 정리를 좀 해야 하는데요. 더티 커피의 시작은 찬 우유 위에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끼얹고, 섞지 않은 채 내는 것이었지만, 현재 중국의 더티는 조합과 응용을 거듭하며 시그니처 커피와 구분이 어려워진 것 같아요. 하지만 더티가 찬 우유와 뜨거운 에스프레소의 조합을 기본으로 한다는 것은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중국 여행 중에 많은 카페를 방문하고 또 다양한 음료를 마셨지만, 충칭의 토토마토(TOTOMATO)에서 마신 더티 커피가 유독 기억에 남아요. 필터 커피도 맛있었지만, 피스타치오 더티가 정말 좋더라고요. 애플 카푸치노도 훌륭했는데, 일정에 여유가 있었다면 이곳에서 판매하던 시그니처 8종을 다 마셔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토토마토의 라떼와 피스타치오 더티
한국의 커피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진 상하이의 O.P.S. 카페도 인상적인 시그니처 커피를 선보이고 있지요. 제가 방문한 시점에는 여름 메뉴 5종을 판매하고 있었는데요. 차와 과일, 허브, 향신료를 매력적으로 조합하여 커피에 더하는데, 조합의 아이디어와 그것을 음료로 구현하는 솜씨가 탁월하게 느껴졌습니다.
선명한 향미의 재료를 섞었을 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이 음료에서 커피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피하기는 어렵지만, 복합성과 바디감을 담당하는 역할로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의 음료였습니다.
O.P.S 카페의 여름 시그니처 5종
아, O.P.S. 카페는 예외지만, 대부분의 중국 카페에는 아메리카노와 라떼 같은 일반 커피 메뉴도 있으니 오늘 레터를 읽고 선입견을 가지실 필요는 없겠어요. 유독 중국 카페에서 더티와 시그니처의 향연이 펼쳐지는 이유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했던 것임을 고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덴마크와 중국 사이 그 어딘가
사실 저희가 가장 잘 아는 시장은 한국과 말레이시아라서, 앞서 말씀드린 두 시장과 자연스럽게 비교를 하게 됩니다. 블랙 커피를 주로 마시는 한국과 밀크 커피를 주로 마시는 말레이시아 사이의 거리도 꽤 멀다고 생각해 왔는데요. 덴마크로 대표되는 북유럽 로스터리의 라이트 로스팅 커피와 중국의 시그니처 커피 사이의 거리는 그보다도 더 멀게 느껴집니다.
아메리카노와 필터를 즐겨 마시는 한국은 그래도 북유럽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까요? 우유 커피를 즐기는 말레이시아는 상대적으로 중국에 가깝다고 봐야 할까요?
저는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는 사람들이 북유럽의 라이트 로스팅 커피와 중국의 시그니처 커피를 제대로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모르는 영역은 아니에요. 북유럽 스타일의 커피나 중국 스타일의 시그니처 커피 모두 한국을 포함한 다른 시장에서도 경험할 수 있지요.
다만 지속적으로 한 방향으로 고도화되어 온 시장은 한번 깊이 있게 탐험해 볼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이를 통해 커피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질 수도 있겠죠. 자신의 커피 여정의 새로운 방향을 떠올리게 될 수도 있고요. 커피 업계에 계시든, 아니면 커피 애호가시든, 흥미로운 탐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