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회원 가입 시 4,000원 할인



BRAND
낮의 커피가 밤을 만날 때
#162 에스프레소 마티니 이야기
낮의 커피가 밤을 만날 때#162 에스프레소 마티니 이야기
들어본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마셔본 사람은 많지 않은 커피 음료가 있습니다. 바로 ‘에스프레소 마티니’라는 이름의 커피 칵테일이에요. 저 역시 빈브라더스에서 일하기 전까진 마셔본 적이 없었던 것 같고요. 일하면서 종종 마실 일이 있긴 하지만, 레터로 다뤄야겠다는 생각까진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요즘 서울에 빈브라더스 커피로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만드는 바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나는 을지로의 에이스포클럽(@acefourclub), 다른 하나는 서촌의 참 제철(@chaminseason)인데요. 바텐더분들이 저희에게 익숙한 커피들로 어떤 칵테일을 만드셨을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오픈런으로 빠르게 다녀왔습니다.

어땠는지 궁금하시죠? 칵테일 재미있게 하기로 소문난 바들이라 역시나 맛있었습니다. 칵테일의 맛만큼이나 흥미로웠던 것은 커피라는 재료를 다루는 바텐더들의 관점과 방법론이었는데요. 오늘 한번 다뤄볼게요. 먼저 에스프레소 마티니가 어떤 음료인지 알아보고,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몇 가지 에스프레소 마티니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나가겠습니다.


-


에스프레소 마티니는 기원이 잘 알려진 칵테일입니다. 1987년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던 바텐더 딕 브래드셀(Dick Bradsell)이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당시의 이름은 보드카 에스프레소(Vodka Espresso)였다고 합니다. 이 음료가 진이나 베르무트를 쓰지 않기에 사실은 마티니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 잘 맞는 이름 같긴 해요. 에스프레소 마티니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마티니 잔을 사용하기 때문이지요.

마티니 잔 ⓒBORMIOLI LUIGI  

국제 바텐더 협회(IBA)에서는 칵테일을 다음과 같은 세 카테고리로 나누는데요. 
• The Unforgettables
• The Contemporary
• The New Era

에스프레소 마티니는 어디에 속할 것 같으세요? 저는 The Contemporary에 속할 줄 알았는데, The New Era로 분류되어 있더라고요. 세상에 나온 지 거의 40년이 되었는데도 ‘새 시대’의 칵테일이라 부르는 것을 보면, 칵테일의 역사가 길긴 한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이럴 때마다 스페셜티 커피의 짧은 역사를 되새겨보게 돼요.


-



에스프레소 마티니는 어떻게 만들까요? 국제바텐더협회(IBA)의 레시피에 따르면 보드카, 깔루아, 설탕 시럽, 그리고 에스프레소로 만듭니다. 커피 리큐르인 깔루아는 커피 원두와 사탕수수를 섞어 만든 증류주에 바닐라와 캐러멜을 더한 것인데요. 깔루아 역시 세월에 따라 맛의 변화가 있었겠지만, 제가 봤을 때 1987년과 2026년의 에스프레소 마티니에서 가장 많이 다를 것 중에 하나는 에스프레소의 품질입니다. 커피의 수준이 달라졌으니까요.


에스프레소 마티니 ⓒIBA

요새 서울 시내의 바를 다니다 보면, 종종 바텐더들의 커피에 대한 높은 관심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바텐더들이 기본적으로 재료에 관심이 많아서일 텐데요. 어쨌든 그들의 커피에 대한 지식과 관심은 자연스럽게 칵테일에 반영이 되겠죠. 제가 오늘 다녀온 에이스포클럽과 참 제철의 에스프레소 마티니가 그러했듯이요.


-


예전 이야기를 잠깐 해도 될까요? 2023년 6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재미있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명동이나 이태원 같은 동네인 부킷 빈탕(Bukit Bintang)에 새로운 빈브라더스 매장을 열고, 오프닝 행사로 커피 칵테일을 선보였는데요. 바텐더 Karl Too의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담긴 네 가지 메뉴 중에 ‘파마산 에스프레소 마티니(Parmesan Espresso Martini)’라는 칵테일이 있었습니다.

파마산 에스프레소 마티니

블랙수트 에스프레소로 만들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로 마무리한 음료였는데 커피의 견과 향과 치즈의 고소한 향이 절묘하게 어우러졌습니다. 치즈를 올린다는 것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는데, 실제로 마셔 본 후에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이렇게 재미있게 풀 수도 있구나’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


제가 모르는 사이 한국의 어떤 바에서는 이미 빈브라더스의 커피로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만들고 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처음 제 레이더에 잡힌 것은 2026년 초, 을지로에 있는 칵테일 바 에이스포클럽의 소식이었어요. 몰트 블렌드로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만들어 내신다는데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지요.

이른 저녁의 에이스포클럽

저녁 일찍 방문했습니다. 여름이라 해가 길어서 그런지 바깥 날씨가 화창했어요. 일반적인 방문이었으면 창가에 앉아 좋은 날씨를 만끽했을 텐데,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마시러 간 것이니 커피 머신이 보이는 곳에 앉았지요. 익숙한 원두봉투가 보이더군요.

밖에서 보니 더 반가웠던 Bb

에이스포클럽에서 판매하는 메뉴의 이름은 ‘에이스프레소 마티니(Acepresso Martini)’였습니다. 실제로 마셔보니 몰트 블렌드의 구수하고 달콤한 느낌을 잘 살린 칵테일이더라고요. 죠리퐁 향이 나는 보드카와 흑임자의 사용이 커피와 조화롭게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터치들이 있었음에도, 상당히 클래식한 에스프레소 마티니로 느껴졌습니다. 기본에 충실한 칵테일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몰트 블렌드가 이탈리아의 클래식 에스프레소 블렌드를 오마주하여 만든 것이라 그런가 싶기도 했습니다. 아주 개인적인 감상이었겠지요.

에이스프레소 마티니

얼마 전에 에이스포클럽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다섯 분이, 오시자마자 다들 에이스프레소 마티니 한 잔씩 마시고 시작하셨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저희 공간이 아닌 곳에서 Bb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지는데요. 이렇게 한국을 방문한 분들께 칵테일의 방식으로 몰트 블렌드가 전해진다는 사실을 알면, 저희 로스터들도 조금 더 신나는 기분으로 몰트를 볶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


에이스포클럽에서 또 다른 칵테일들을 마시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참 제철로의 오픈런을 위해 서촌으로 이동했습니다. 3호선 경복궁 역에서 내리면 바로 근처라 이동하기가 편하더군요. 칵테일 좋아하시는 분들은 두 바를 묶어 다녀보시는 것도 괜찮으실 것 같습니다.

참 제철의 문을 열면 보이는 광경

그렇게 참 제철에 도착했습니다. 참 제철은 제철 재료로 다양한 칵테일 메뉴를 선보이는 바인데, 저는 매 계절 모든 메뉴를 맛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평소 같으면 또 이것 저것 시켜보려 했겠지만 오늘 방문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지요. 바로 6월의 Bb 커피 ‘에티오피아 라레사 내추럴’로 만든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맛보기 위해서였어요. 

저를 맞아주신 바텐더께서도 제가 무엇을 주문할지 이미 알고 계시더군요. “일단 그걸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끄덕하시고는, ‘Bb 에스프레소’란 이름의 칵테일을 만들어주셨습니다.

나오자마자 벌컥 마셔버린, ‘Bb 에스프레소’

에이스포클럽의 ‘에이스프레소 마티니’가 몰트 블렌드의 정체성을 발전시킨 칵테일 같았다면, 참 제철의 ‘Bb 에스프레소’는 에티오피아 라레사 내추럴의 향미를 확장시킨 느낌이었습니다. 라레사는 기본적으로 블루베리와 라벤더 향이 나는 커피인데, 거기에 망고와 살구, 아몬드라는 잘 어우러지는 향미 조합을 더함으로써 상당히 복합적인 칵테일이 되었더라고요. 물론 제가 라레사라는 커피를 너무 잘 알아서 '확장'이라 느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크게 보면 과일스러운 커피에 과일 향미를 더해 강화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어쨌든 바에 앉아 ‘Bb 에스프레소’를 홀짝거리고 있는데, 옆 테이블 고객 분들께 바텐더께서 이 메뉴를 설명해 주시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빈브라더스 커피로 만든 칵테일이란 설명이 제 귀에 꽂혔던 것은 단지 제가 빈브라더스 팀이기 때문이었겠요. 그렇지만 뭔가 황홀하달까요. 주문하신 고객분들이 부디 맛있게 드셨기를 바랐습니다. 물론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훌륭한 칵테일이었지만요.


-


에이스포클럽과 참 제철로의 오픈런을 마치고, 상수동 커피하우스로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만든 에스프레소 마티니도 마시고 싶더라고요. 어느덧 해는 저물었고, 마감 시간이라 바를 정리 중이던 마일스가 저만을 위한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만들어주었는데, 쉐이킹하는 그의 옆으로 보이는 커피하우스 야경이 정말 끝내주더군요. 매일 커피하우스로 출근하긴 하지만 보통 해지기 전에 퇴근해서 잘 보지 못하던 야경이라 반갑더라고요.

eea4be2f05e30b63420403f51ebb78bc_174951.jpeg
Bb 에스프레소 마티니

Bb 에스프레소 마티니에는 보드카 대신 안동 소주를 사용하는데요. 한국의 커피하우스에서 선보이는 커피 칵테일이니 한국의 재료를 쓰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어요. 에스프레소는 그때 그때 잘 어울리는 시즈널 커피를 골라 쓰고요. 서울 상수동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밤을 계획 중이시라면, 커피하우스에서 에스프레소 마티니 한 잔 하고 시작하시는 건 어떨까 싶네요. 원래 에스프레소 마티니라는 게 밤에 신나게 놀고 싶을 때 마시는 음료니까요.


-


마지막으로 ‘에스프레소 마티니’라는 이름에 관한 소소한 에피소드를 전해드리고 싶어요. 이 메뉴의 이름이 상당히 길잖아요. 그래서 자주 말해야 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줄이고 싶어질 텐데, 제가 오늘 만난 바텐더분들은 대부분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에쏘’라고 부르시더군요. 그에 반해 저희 커피하우스의 바리스타분들은 ‘마티니’라 부르시고요. 재미있죠?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커피하는 사람들은 보통 에스프레소 자체를 에쏘라 부르니까, 칵테일은 자연스럽게 마티니라 부를 것 같고요. 바텐더들은 그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에쏘라고 줄여 부르는 게 아닐까요? 원래 이름이 보드카 에스프레소이기도 했고요. 사실 같은 지역에서 세대만 바뀌어도 변하는 게 줄임말이니, 그냥 내부적으로 통용되는 것으로 쓰면 될 일인데요. 그저 바리스타와 바텐더의 언어 사용이 다른 게 재미있어 남겨보았습니다.


-


오늘 들려드린 에스프레소 마티니 이야기 어떠셨어요? 기본적으로 커피는 낮을 위한 음료고, 술은 밤을 위한 음료인데 그 둘을 만나게 하는 게 바로 커피 칵테일이죠. 흥미로운 장르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널리 소비되고 있지 못한 상황인 것 같아요.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드셔보신 적이 없다면, 다음에 한번 시도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메뉴판에 없어도 커피만 있다면 웬만한 바에서는 다 만들어주실 거예요. 예상 외의 즐거운 밤을 보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TODAY VIEW

0/2
상단으로 이동